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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Other movies

일본영화 종이달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화 시킬겸 '백종원의 3대천황'을 보고나서 별달리 할게 없어서


저번에 누군가 한번 보라고 권해줬던 영화가 생각나 다운 받아둔걸 찾아봤다.


피지에서는 피지방송을 시청하는 것도 아니고 케이블을 보는 것도 아니라. 오로지 인터넷이랑 다운 받아둔 데이터를 보는거예요.


여기서의 가장 아쉬운 점중 하나죠. ㅎㅎ 어머니께 보여드리던 영화랑 드라마 예능들이 이제 바닥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본 영화는 일본영화 '종이달'이라는 영화입니다.


아래 그림만 보고는 이게 왜 스릴러 장르인지 감이 안옵니다. 그냥 가정 드라마 같은 분위기? ㅎㅎ 





스포일러를 포함함 ^^ 상당히 많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에서 원작의 느낌을 발견하지 못할 때 


그것을 인질 삼아 영화에 독설을 퍼붓고 손가락질 하는 걸 자주 봐왔습니다. 


이런 걸 시쳇말로 '원작 부심'이라고 했던가요? 행여나 이 영화를 보고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는지 문득 생각이... 


'종이달'은 경제거품이 한창 꺼져가던 1994년 일본을 무대로 성실했던 한 여성의 삶이 돈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게 되는 과정을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원작에서 표현되는 여주인공의 독백을 그대로 영화에 구현하기 곤란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어리고 서투르지만 쾌활한 성격의 동료 '아이카와'와 25년째 올곧게 직장생활을 해나가는 '스미', 어찌 보면 서로 대비되는 캐릭터입니다.


두 인물은 사건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갖고, 동시에 주인공 '우메자와'를 통해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주며 여러 인간군상 가운데


한 부류를 대변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그 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추락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좋은 취지와 함께 시작된 행동이 개인의 쾌락으로 변질하여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부를 대하는 여러 가지 태도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직장 말단부터 부자들까지 어떤 태도로 돈이라는 것에 임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오프닝에서 연출되는 도시의 쇼트처럼 한 여인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씁쓸한 파국을 맞기 전의 '우메자와'도 불쌍한 여인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아이를 갖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고, 비록 단정한 


외모에 성실한 근무로 은행의 영업 아르바이트에서 계약직으로 월급도 올랐지만, 남편은 오랜 결혼생활에서 비롯된 귀찮음 때문인지 


아니면 남자들의 무신경함에서 오는 태생적 눈치 없음 때문인지, 우메자와가 애써 사준 커플 시계를 골프 칠 때나 찬다며 섭섭(무심한넘)하게 하고 


얼마 후 버젓이 차고 있는 시계에는 아랑곳 없이 출장 선물이라며 새 시계를 쓱 내밀기까지 합니다. 


풍족하지 못한 생활 덕에 그녀의 마음 한 쪽에는 허영심을 딛고 올라올 경제적 공허함 또한 도사리고 있습니다.







은행 직원으로서 그 공허함에 불을 댕긴 건 변태고객의 젊은 손자 '리카'의 외도였습니다. 


화장품 결제금액이 모자라 고객의 돈으로 잠시 메꾼 행위가 불씨가 되는데, 


우리에게 익숙하고 당시에는 통했을 전표조작을 통해 점점 큰 금액을 횡령하여 물질적, 육체적 쾌락을 메꿔갑니다.





특이하게 영화는 정사 씬들을 선명한 조명으로 연출하고 왠지 부자연스러운 달콤한 음악을 집어넣었는데, 그녀의 일장춘몽 혹은 화양연화


를 표현하려는 건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쨌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일어나는 충동들을 그녀는 절제 못 하고 계속해서 부정을 저질러나갑니다.







마침 그녀와 비교해볼 두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아이카와는 현실과 타협하지만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 '다들 그렇게 살듯' 살아가는 인물.


스미는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해고의 압박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부자들의 성향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변태고객인 줄만 알았던 노인이 '수익에 따라 움직이는' 냉철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고


남부럽지 않은 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소소한 것들에 만족해하는 노파를 생각해 보면 행복을 얻는 열쇠는 역시 남과 비교하지 않음에 있


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노파 왈, "목걸이가 진짜건 가짜건 목걸이는 예쁘잖아" 


하지만 사람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기 어디 쉬운 일인가? 


이야기의 뒤에 작은 반전들이 기다린다. 아이카와는 (다들 그렇게 묘사된) 몰래 부정을 저지르던 차장 대신 공무원과 결혼을 하고 은행을 


떠나고 자신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리카 또한 젊은 또래의 여자와 외도를 합니다. 


늘 오늘 같은 희망없는 날들이 싫었다고.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우메자와와 그녀를 줄곧 의심하던 스미가 크게 부딪힙니다. 


그녀의 죄를 추궁하는 삼자대면의 화면에는 '막힌 창문'- 세 사람 - '비상구'가 배치되어있습니다.


현실 속 신분의 우위에 있는 차장은 비록 자신도 지은 죄가 있지만 되려 우메자와를 꾸짖으며 비상구로 빠져나가고


스미도 그녀에게 "그래도 너는 놀 만큼 놀았으니 된 거 아닌가. 나는 즐기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아왔다"며 핀잔을 줍니다.


우메자와는 답합니다 "나는 그동안 거짓 행복(종이달)을 따라왔다. 내 주위의 돈들,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 생각하니 자유로워지더라"


그렇습니다. 모든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 개념일 뿐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현실은 '실존'하는 법. "예전 당신이 얘기했던 대로 우리의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어" 


그녀에게는 나갈 비상구도 없습니다. 죗값을 치르는 줄 알았던 우메자와는 창문을 깨부수더니 이내 밖으로 내달려 도망칩니다.



돈을 횡령하고 어린 남자와 부정에 빠진 우메자와의 행위는 단순한 범죄행위로 대표되는 허영심의 표출이기도 하지만, 서두의 얘기처럼


자신을 속이는 선의의 위험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는 어릴 적 그녀가 아버지의 지갑까지 털어가며 무모하게 도왔던 이국땅의 어린이와, 손자에게조차 인색했던 변태고객의 돈을 빼돌려 


'리카'의 학비로 메꾼 시퀀스. 즉 현재의 우메자와를 계속해서 교차시켜가는데, 어린 그녀는 선의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을 꾸짖는 


수녀에게 "과정이야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불쌍한 어린이에게 도움이 됐으면 그만"이라고 답합니다.


또한, 변태고객의 200만 엔을 빼돌렸던 목적이 학비를 지원해 주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그 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빗나간 욕구를 채워 


나갑니다. 두 가지 모두 좋은 취지가 포함 된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쾌락으로만 변질되어 가는거죠. 



영화의 마지막에 이국땅에서 성인이 된, 잘 자란 어린이와 만나고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다가오는 경찰에 황급히 도망가는 연출을


보면 바람직한 일을 했음에도 그 취지가 변질 되버린 우메자와의 처지를 상징하고, 이내 카메라는 군중을 비추며


그녀의 인생을 포함한 다사다난한 인간군상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저와 동갑인 주연을 맡은 미야자와 리에는 가만히 보면 그리 이쁘지도 뛰어난 면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 같습니다.


뭐 배우가 그러면 됐죠... 근데 외도 상대로 나온 이케마츠 소스케는 좀 아니다(발연기 ㅎㅎ)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2시간의 런닝타임이 그리 길다고는 생각 안들었던 것 같습니다.